코카-콜라 수집품이 만 오천 개? 코카-콜라 수집가 여덕정

2018. 12. 16

코카콜라 콜렉터 여덕정 씨

(▲ 30년 째 코카-콜라를 수집하고 있는 여덕정 씨)

 

오래전에 썼던 일기나 받았던 편지 등을 다시 꺼내 읽으며, 행복했던 추억에 잠길 때가 있다.

30년째 코카-콜라를 모으고 있는 여덕정 씨는 진열장에 전시된 15,000여 점의 코카-콜라 수집품들을 꺼내보며 매일 행복한 회상에 잠긴다.

경기도 평택에서 유명한 중국요리 맛집 ‘홍태루’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코카-콜라 수집가들 사이에서 꽤 유명인사다.

코카-콜라 본사에서도 전시회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에게 구하기 힘든 다양한 코카-콜라 제품을 지원 받고 있으며, 코카-콜라 마니아들도 그에게 조언을 구하러 올 정도라고.

소문으로만 듣던 그를 만나기 위해 홍태루를 찾았다.

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2층을 지나,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그만의 ‘아지트’가 나온다. 30년간 모아온 코카-콜라 수집품들로 가득한 곳이다.

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다 기억할까 궁금해하던 찰나, 코카-콜라 한 병을 뒤집어 보여줬다. 거기엔 선물을 준 사람의 이름, 날짜, 장소가 적혀있었다.


“모든 코카-콜라엔 스토리가 있어요. 언제, 어떻게 제 손에 들어오게 됐는지 추억이 담겨있죠.

그걸 잊지 않으려고 이렇게 항상 메모를 해둬요.”
 

그래서일까. 여덕정 씨가 코카-콜라를 소개하는 방식은 특별했다. “어떤 콜라를 보여줄까요?”가 아니라, “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?”로 시작했다.

가장 소중한 추억이 담긴 수집품을 보여달라고 하자, 코카-콜라 로고가 그려진 샤프를 꺼내 들었다.

“제 아들이 어렸을 때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친 적이 있어요. 걷는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었는데, 하루는 지우개가 없다고 문구점까지 혼자 갔다 와보겠다고 하더라고요.

그래서 천 원을 줬는데, 지우개가 아니라 이 샤프를 사 온 거예요. 이걸 보자마자 아빠가 좋아할 것 같아서 지우개는 못 샀다고. 그 마음이 얼마나 예쁘고, 귀엽고, 뭉클하던지. 이 샤프가 제 무덤까지 가지고 갈 보물 1호에요.”

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니, ‘아, 이 사람은 수집품이 많아서 행복한 게 아니라, 추억이 많아서 행복한 거구나!’라는 생각이 들었다.

여덕정 씨 또한 ‘진정한 수집’은 수집 그 자체가 아니라 ‘수집의 과정’을 즐길 줄 알고,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에 있다고 이야기한다. 그리고 그 과정 속에는 언제나 사람이 함께 한다. 

“물건 자체만 보면 저랑 같은 물건을 가진 사람들이 많겠죠. 하지만 제 공간에 있는 모든 수집품들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.

코카-콜라 샤프가 세상에 수백만 개가 있어도 저에겐 아들과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단 하나의 샤프니까요.”

그가 이토록 코카-콜라 수집에 애정을 갖게 된 것은 30년 전, 고등학생일 때였다. 화교였던 여덕정 씨는 대만과 한국을 수시로 오갔다. 당시 대만은 한국과 달리 코카-콜라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, 그의 매형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.

코카-콜라를 모으면 재미있다는 이야기에 솔깃해 코카-콜라 수집계(?)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.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, 금세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코카-콜라 수집을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, 관계도 더 돈독해졌기 때문이다.

서로 원하는 것을 교환하면서 연락처를 주고받는 건 기본. 그래서 여덕정 씨의 친구는 전 세계 각국 어딜 가든 있다. 코카-콜라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, 언젠가부터 주변 사람들이 코카-콜라만 보면 자신을 떠올리고 사다 주기도 한다.

“필리핀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, 같이 갔던 친구가 한참 동안 숙소에 안 돌아오더라고요. 얼마 뒤에 코카-콜라 로고가 적힌 표지판을 가지고 뛰어들어왔어요. 안 되는 영어로 손짓, 발짓해가면서 2달러에 사 왔다면서.

사실 선물이라는 게 상대방이 나를 위해 고민한 시간과 노력, 발걸음에 더 감동하는 법이잖아요. 코카-콜라를 수집하면서 정말 좋은 친구도 많이 생겼고, 진한 우정도 많이 나눴어요.”

만 오천 개의 수집품이면 코카-콜라 수집가로 기네스북에 도전해도 되지 않겠냐고 묻자, 단호하게 ‘그럴 생각은 없다’라고 대답했다.

“돈만 있으면,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모을 수 있어요. 인터넷에서 열심히 클릭하면 쉽게 살 수 있으니까요. 하지만 그렇게 모은 수집품엔 특별한 이야기가 없잖아요. 제가 모은 게 아니라 택배 아저씨가 모아준 거죠.

개수를 늘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. 진짜 소중한 것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오잖아요. 느리더라도 저만의 이야기로 이 공간을 채워가는 것. 그게 제 즐거움이에요.”

언젠가는 코카-콜라 박물관을 차리는 게 꿈이라는 여덕정 씨.

그가 만든 박물관엔 수집품이 아니라,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. 그 이야기 속엔 코카-콜라를 발견했던 어떤 이의 발걸음이 있고, 자신을 떠올려줬던 고마움도 있으며, 코카-콜라로 우정을 나눴던 소중한 시간과 추억도 있을 것이다.

마시는 즐거움을 넘어, ‘함께 하는 즐거움’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는 여덕정 씨의 수집 인생을 앞으로도 계속 응원한다! 

* 여덕정 씨의 수집 스토리

길을 걷다 어떤 옷 가게에 전시되어 있던 코카-콜라. 자동차가 그려진 게 유니크하다. 3년 동안 찾아가서 구애를 펼친 끝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고.

필리핀에서 어렵게 구한 1리터짜리 코카-콜라 병. 우연히 길에서 발견한 코카-콜라 병에 큰 관심을 보이자 택시 기사도 힘껏 도왔다고.  함께 재래시장을 뒤져가며 어렵사리 구했다. 

코카-콜라에서 사내 행사를 할 때 직원들에게 나눠줬던 코카-콜라. (에디터에게도 생소한 응답하라 1999!)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됐던 콜라가 아니라, 더 구하기 힘들었던 아이템.

이 스토리를 이야기하며, 여덕정 씨는 다음 생엔 꼭 코카-콜라 본사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겠다고 다짐(?)했다.

코카-콜라에서 장기근속했던 직원들에게 선물했던 코카-콜라 X 롤렉스(ROLEX) 시계를 본뜬 모방제품. 세관 직원이 진짜 제품으로 의심해서 해명하느라 애먹었다고.  

2002년 월드컵을 기념해 나온 코카-콜라. 이걸 구하기 위해 전국 팔도 발품을 안 판 곳이 없다고 한다. 4강 신화의 짜릿함이 아직도 생생하다!

*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코카-콜라 

1981년 영국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열린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식을 기념해서 나온 코카-콜라 병

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사진이 새겨진 코카-콜라

코카-콜라의 오랜 친구! '맥도날드'와 콜라보레이션한 코카-콜라

북미정상회담을 기념해 싱가포르에서 출시한 한정판 코카-콜라. 한국어와 영어로 절반씩 ‘Coca-콜라’라고 표기된 것이 특징